1형 당뇨 판정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마주한 공포는 매일 수십 번씩 손가락 끝을 찔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작고 날카로운 바늘로 살을 뚫고 피를 내는 일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만난 연속혈당측정기, '리브레'는 내게 마법 같은 도구였다. 팔 뒤쪽에 동전만 한 센서를 하나 붙여두기만 하면, 스마트폰 하나로 내 혈당이 하루 종일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래프로 그려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신세계 같은 편리함도 잠시, 나는 곧 '숫자의 배신'이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 분명 리브레 숫자로는 정상인데 몸은 저혈당 증상으로 사정없이 떨리고 있거나, 반대로 리브레 숫자가 너무 높아서 겁을 먹고 채혈기로 확인해 보면 생각보다 낮은 숫자가 나오는 식이었다. 30에서 50, 많게는 그 이상 차이가 날 때면 "도대체 어떤 숫자를 믿고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다. 오늘은 이 혼란스러운 숫자 차이의 비밀과 내가 몸으로 배운 대처법을 공유해보려 한다.

혈액과 세포액의 속도 차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리브레와 채혈기가 '어디서' 당 수치를 찾아내느냐 하는 점이다. 채혈기는 손가락 끝 모세혈관에서 흐르는 '진짜 피'를 직접 확인한다. 반면 리브레는 혈관 밖으로 흘러나온 '세포 사이의 물(조직간액)'에 들어있는 당 수치를 잰다. 우리 몸의 당분은 혈관을 먼저 타고 흐르다가 나중에 세포 사이의 물로 전달된다.
이 과정을 기차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채혈기는 기차의 맨 앞칸인 '기관차'의 속도를 재는 것이고, 리브레는 기차의 맨 마지막 칸의 속도를 재는 셈이다. 기차가 일정한 속도로 달릴 때는 앞칸과 뒷칸의 속도가 비슷해 보이지만, 기차가 갑자기 급출발하거나 급정거를 하면 앞칸과 뒷칸 사이에는 큰 시간 차이가 발생한다.
내가 밥을 먹어서 혈당이 급격히 오를 때, 채혈기는 이미 높은 숫자를 찍고 있지만 리브레는 한참 뒤에야 엉금엉금 그 숫자를 따라온다. 반대로 운동을 하거나 인슐린을 맞아서 혈당이 뚝 떨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실제 혈액 속 당분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는데, 리브레는 여전히 안전한 숫자라고 나를 안심시키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새벽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을 때 리브레는 110이었지만, 실제 채혈 결과는 70이었던 그 아찔한 경험 이후로 나는 혈당이 빠르게 변하는 순간에는 무조건 채혈기를 먼저 꺼내게 됐다.
기계의 오차와 외부 압박
리브레를 쓰다 보면 기계 자체의 '성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날도 많다. 센서를 처음 붙인 날이나, 수명이 거의 다 되어가는 마지막 며칠은 유독 숫자가 널뛰기를 한다. 어떤 센서는 유독 실제보다 숫자를 낮게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보름 내내 실제 혈당보다 높게 뜨기도 한다. 1형 당뇨인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센서 뽑기 운'이 정말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특히 나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자다가 발생하는 '눌림 저혈당' 현상이었다. 한창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리브레에서 저혈당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잠결에 너무 놀라 당 보충용 음료를 마시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을 찔러봤더니 혈당은 너무나도 정상이었다. 알고 보니 잠결에 센서가 붙은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우면서 센서가 강하게 눌렸고, 그 압박 때문에 센서 주변의 액체 흐름이 막혀 숫자가 일시적으로 툭 떨어진 것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기계가 주는 숫자에만 내 삶을 온전히 맡기지 않기로 했다. 숫자가 너무 이상하면 고객센터에 문의해서 상담을 받고, 필요하다면 새 센서로 교체받는 단호함도 생겼다. 새벽에 그래프가 통째로 끊겨 있거나 비정상적으로 낮게 찍힐 때 오는 그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오늘 센서가 좀 컨디션이 안 좋네"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기계는 완벽한 신이 아니라, 그저 나를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숫자보다 중요한 화살표의 흐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리브레를 포기할 수 없다. 리브레의 진짜 가치는 '지금 이 순간의 정확한 숫자'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흐름'에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손끝 채혈만 하던 시절에는 하루에 몇 번 점을 찍어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그 점들을 이은 길고 긴 선을 보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식후 혈당이 160이 나왔을 때, 채혈기만 있다면 이 숫자가 올라가서 200이 될지 내려가서 100이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리브레 옆에 붙은 화살표는 "지금 혈당이 로켓처럼 수직 상승 중이야" 혹은 "이제 곧 천천히 내려갈 거야"라고 미리 귀띔해 준다. 나는 이 화살표를 보며 미리 추가 인슐린을 맞을지,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볼지를 결정한다.
또한 리브레 덕분에 내가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혈당이 가장 예쁘게 유지되는지, 혹은 어떤 운동이 저혈당을 유발하는지 나만의 데이터를 쌓을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아침마다 혈당이 높은 이유를 몰라 답답했는데, 밤새 그려진 리브레 그래프를 보며 새벽 몇 시부터 혈당이 야금야금 올라갔는지 확인하고 트레시바 용량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결국 리브레와 채혈 숫자가 달라서 오는 '멘붕'은 우리가 1형 당뇨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통과 의례와 같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일치가 아니라, 내 몸의 감각을 믿는 것이다. 몸이 이상하면 숫자가 어떻든 채혈기를 잡고, 리브레가 보여주는 전체적인 흐름을 읽어내며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것. 그렇게 기계와 내 몸 사이의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 바로 1형 당뇨 관리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완벽하지 않은 두 숫자를 가이드 삼아, 나는 오늘도 조금 더 건강한 내일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